‘서럽고 원통시러버서 내가 죽으면 우짜꼬....억울해가 죽으마 안된다'

할매 한분이 어제 저녁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사람들은 그녀를 ‘꽃할매’라고 불렀다.

12살인지 13살인지,,,

일제시대때
언니랑 산에 나물 캐러 갔다가 군용트럭을 몰고 온 일본군에게 납치되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끌려간 것이 한 많은 인생의 시작이었다.

어렵던 시절에 부모에게 사랑받고 응석받이로 자랄 나이에 대만인지 베트남인지도 모르고
끌려가 하루에 많게는 30-40명의 남자를 받아냈다고 했다.

꽃할매의 말에 의하면 그곳은 생지옥이라고 했다.

아파도 아프다 말을 할 수 없고,

전쟁으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의 욕설과 폭행은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

같이 끌려온 어떤 처자는 원치않는 임신을 하고도 배가 불러 더 이상 움직이지 못 할 때까지도
몸을 줘야 했고, 더 이상 쓸모없어지면 일본도로 가차 없이 베어버렸다고 했다.

꽃할매도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겼다고 했다.

 

해방이 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어린나이에 생지옥에서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정신이 나가 있었다.

한국에 돌아오긴 했는데 또 다른 고통이 시작된다.

정신이 나간...주변에서 ‘미친년’이란 소릴 듣는 처자에게 누가 신경이나 썼을까 싶다.

꽃할매의 말로는 어떤 아저씨의 손에 이끌려 고향인 칠곡쪽으로 간 것 같다고 했다.

일제의 만행으로 멀쩡한 곳이 없는 건 꽃할매의 몸 뿐 아니라 고향산천도 마찬가지였다.

시쳇말로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뿐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할매는 조금씩 몸과 마음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해방되고 60년이 훌쩍 지났다.

꽃할매는 대구에 있는 영세민 아파트에서 살았다.

꽃할매가 그 아파트에서 살기 시작한게 언제인지는 모르겠다.

가난하고 하루벌어 먹고 사는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

사는게 힘들어 일년에 서너건 정도는 자살하는 이들이 나오는 아파트 단지의 작은 공간에서
혼자 살았다.

당신의 몸도 성하지 않았지만 주변에 장애인들을 찾아가 소일거리도 하고 같이
얘기도 하면서
지냈다.


같은 처지의 할매들이 대구에도 여럿 있었다,

그 할매들과 함께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일제만행의 증언이 필요하다면 어디든 갔다.

서울도 가고 일본도 가고 미국도 갔다왔다.

그렇게 불편한 몸으로 몇 년을 알리고 소리쳐서 겨우 위안부결의안 하나 얻었다.

 

꽃할매는 올 1월에 먼저간 순악이 할매하고 꽃을 놨다.

꽃잎과 이파리등을 모아다 말려서 이쁘게 놓고는 액자를 만들곤 했다.

한해두해 하다보니 실력이 늘어서 자그마한 열쇠고리부터 큰 액자까지 만들어냈다.

전시회도 여러번하고 상도 받았다.

주변에서 꽃할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할매는 항상 외로웠던 것 같다.

가족도 없고, 하나있는 손주녀석은 같이 살 수가 없었다.

작년인지 재작년인지 명절 전에 찾아갔을 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오늘 같으마 살겠다. 우째 이래 사람들이 안 쉬고 오노..’

한번씩 찾아가면 손을 잡아줬다.

먹을거리라도 조금 사서 가면 꼭 이웃과 나눠 먹었다.

다 혼자는 뭘해도 외롭기 때문일거라 생각한다.

 

권윤덕 작가의 ‘꽃할머니’라는 책이 있다.

권윤덕씨가 꽃할매를 만나서 사는 이야기를 듣고는 책으로 만들어서 꽃할매에게 헌정했다.

그날 할매는 분홍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맨 앞줄에 앉아있었다.

책을 읽어나가던 권윤덕 작가의 울음섞인 목소리와 눈물을 훔치던 모습이 보였다.

할매를 알게모르게 도와주던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 모였지만 누구보다 이뻤던
꽃할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꽃할매는 담배를 피웠다.

몸에도 안 좋은데 왠만하면 피우지 마시라고 하면 ‘내가 이 낙도 없이 우째 사노..’라고 했다.

한가치 빼서 두어번 빨고는 끄고 다시 생각나면 두어번 빨고 다시 끄고,,,

그렇게 담배 한가치로 서너번은 나눠 피웠다.

그렇게 피우는 담배값도 부담스러운지 담배값 올린다고 나랏님을 욕할 때는 귀엽기도 했다.


할매가 병원에 입원했다.

할매는 검사받고 일주일 정도면 집에 가는 걸로 알았다.

한달쯤 지났을 때 다리에 힘이 없어 일어서지를 못했다.

그 때 꽃할매는 이러다 죽는거라며 소리없이 우셨다.

간암이었다.

주변에선 다 아는데 할매만 몰랐다.


담배 때문에 간암이 걸리진 않았을 거라고 확신한다

꽃할매의 인생을 대신 살아라 하면 억만금을 준대도 대신 살 사람이 없을 거다.

상상만으로도 치가 떨린다.

꽃할매의 병은 꽃할매 때문에 생긴 병이 아니다.

일본이 만들어준 병이고,

그들에게 무관심했던 위정자들이 만들어준 병이다.

아직도 이땅에서 뻔뻔하게 큰소리치며 사는 친일파들이 만들어준 병이다.

어제저녁 꽃할매가 돌아가셨다.

혹시나 다음 생이 있다면 부디 아무런 고통없는 세상으로 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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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herryda (2010/12/06 14:24) 수정/삭제  답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폭력없는 평화로운 곳에서 평안하세요